작가와 함께떠나는 오산역사문화 테마기행 탐방 - 2

자유를 지켜주는 죽미령 평화공원과 유엔 초전기념관을 찾아서

손창완 | 기사입력 2021/06/28 [17:07]

작가와 함께떠나는 오산역사문화 테마기행 탐방 - 2

자유를 지켜주는 죽미령 평화공원과 유엔 초전기념관을 찾아서

손창완 | 입력 : 2021/06/28 [17:07]

6월25일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시절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맘때 되면 운동장에 퇴약볕 아래 앉아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쳐부수자 북한군 ! 때려잡자 괴뢰군 !” 열변을 토하는 웅변대회가 열렸다.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   © 손창완


그날의 추억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죽미령으로 향했다.

죽미령은 한국전쟁발발하고 유엔군 참전과 함께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가 1950년 7월 5일 오전 8시부터 처음으로 북한군을 상대로 치열한 교전을 펼친 곳이다. 

 

필자가 찾아간 이날은 붉게 물들어가는 넝쿨장미와 언덕에 노랗게 물들어가는 금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공원이 평온하기만 했고 해맑은 햇살이 애교부리고 녹음이 짙은 하늘 초록 이파리로 뒤덮인 가로수 아카시아 향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유엔평화공원 일대  © 손창완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자유와 평화를 찾아 볼수 없을 것이기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엄숙해지면서 유엔군과 북한군이 처음으로 전투 벌인 과정을 시물레이션으로 보면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스미스 특수임무 부대원들의 고귀한 희생과  뜻을 기려본다.

 

새로 세운 초전비에서 사진 한컷 찍고 당시 참전한 16개국의 유엔군의 국기가 계양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스미스평화관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1982년 새로 건립한 유엔군초전기념비 앞에서  © 손창완

 

평화관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이글었던 찰스 스미스 중령입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홨고 바닥에 6.25 전생희생 한국군 777,360명 희생 문구 보면서 얼마나 무서운 전쟁이었나 생각해본다.

 

스미스평화관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활동상 시간공간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체험할 수 있는 VR(가상현실 체험존)에서 스미스 부대원이 되어 체험 할 수 있다.

 

노란 코스모스꽃이 만발히 피어있는 공원에 종전 이후 1955년에 미 제24사단에서 전투에 참여한 540명 부대원의 희생을 기리고자 540개의 돌을 쌓아 건립한 유엔군초전기념비가 있고 전투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동판이 부착되어 있다.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540명 스미스 부대원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540개의 돌로 건립한 유엔군초전기념비  © 손창완

 

기념비와 동판을 오산시가 경기도 등록문화재 등록 예고되어 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서고 다시금 자유의 고마움을 되새겨본다.

 

잠시 죽미령 전투(오산 전투)상황을 살펴보면 유엔군 특수임무 스미스부대는 스미스(Smith) 중령의 지휘 아래 편성된 부대이다.

 

1950년 7월 1일 부산에 도착하여 북한군이 남진하는 경부국도로 북상하였다. 7월 4일 오산 북방 죽미령 일대 양쪽고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2개 소총중대와 75미리 무반동총 4정 및 4.2인치 박격포 4문을 포함하여 모두 406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죽미령 스미스평화공원에서 수원 방향을 주시하는 스미스 중령 동상  © 손창완

 

그 밖에 105미리 곡사포 6문으로 이루어진 미군 1개 포대의 화력을 지원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보유한 포탄은 1,200발이었고, 그 가운데 대전차 포탄은 6발에 지나지 않았다.

 

경부국도와 철길 주변으로 100m 남짓한 높이의 산등성이들을 끼고 엉성하게 배치된 미군은 북한공산군이 미군의 모습을 실제로 보면 이내 물러설 것이며, 한두 차례의 경찰작전을 마친 다음 곧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에 빠져 있던 터여서 제대로 싸울 태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마침 그 후방의 오산에서는 국군 17연대가 미공군의 오폭을 받아 많은 피해를 입은 채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 넘쳐 있던 미군은 국군과 협공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산 죽미령전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장면을 연상케하는 유엔군초전기념비  © 손창완

 

수원을 점령한 북한군 정예부대인 제4사단은 7월 5일 아침 107전차연대를 앞세워 스미스특공대를 공격해 왔다. 8시 16분 미군은 첫 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그러나 무반동총과 로켓포는 적 전차를 멈춰 세우지 못하였다.

 

이에 다급해진 미군 포병은 죽미령을 넘어 미군의 보병진지를 짓밟고 들어 오는 전차 2대를 직접 조준하여 쏘아 파괴하였으나 대부분의 전차들은 미군 보병의 방어선을 지나 남쪽을 향해 내려갔다.

 

스미스부대는 첫 전투에서 150여 명이 죽고 26명이 실종되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맥아더 장군은 죽미령 전투 결과를 보고 받고 비로소 북한군의 전력을 가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국전쟁 당시 오산 죽미령 전투는 유엔국으로 참전한 미군의 희생으로 낙동강 방어전선을 구축하는데 시간을 벌었던 전투로써 의미 있고 중요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미령 전투를 기억해주길 바라며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싸워서 쟁취하고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 손창완 시인

 

 

손창완 시인

 

-시원문학 동인회 회원

-중앙일보 주앙시조백일장 장원

-공직문학상 시조부문 은상 수상

-저서, 시산문집 「불악산」

-동인지, 「시원」, 「시혼」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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