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택시를 몰며 곳곳을 누비고 피곤한 몸 잠시 눕혔다가 봉사에 참여하는 권오창 씨의 봉사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오산시모범운전자회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권오창 씨는 오산 관내 곳곳에서 출·퇴근 시간 또는 각종 행사장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권오창 씨는 “오산은 면적은 적지만 많은 차량이 통행하는 도시로서 교통체증이 극심한 도시”라며 특히 “출·퇴근 시간 또는 여러 행사장 입구에는 교통 체증으로 자칫하면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활동 중인 오산시모범운전자회는 34명의 회원이 순번을 정해 관내 교통체증이 유발되는 곳을 선정해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안양이 고향인 권오창 씨는 22세 때인 1980년대 초반, 오산에 터를 잡고 어린나이에 리어카 한 대로 연탄을 배달하는 이른바 연탄장사로 시작했다.
당시 거의 대부분의 가정집을 비롯해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시대였기에 권 씨의 연탄 사업은 번창하며 주문량이 날로 늘어 몸은 힘들었어도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리어카를 직접 끌고 다니며 연탄을 배달한 지 약6년 후, 구)화성경찰서 앞에서 돼지갈비 전문 식당을 경영하게 되어 어엿한 사업가로 인정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처갓집의 이런 저런 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사업까지 많은 손해를 입게 되면서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혼자 키우게 되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을 안고 살아왔었다.
이후 90년대 초반, 모든걸 잊고 새롭게 시작하면서 법인택시 기사를 시작했다. 당시 택시 기사들의 벌이가 꽤 괜찮은 편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또한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 조건이어서 두 아이들을 돌보기에 좋았다고 회상한다.
그렇게 법인택시를 운행한지 10년 하고도 8개월이 흘러 개인택시를 받게 되면서 법인 택시 기사의 삶보다 더 여유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약 6년 후, 두 자녀의 학자금 마련 등 여의치 않은 상황에 개인택시를 팔수 밖에 없었다.
권오창 씨는 다시 법인택시 기사로 일을 시작해야 했지만 후회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박봉의 월급에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그렇게 택시업에 종사하면서 각종 애로사항은 늘 도사리고 있었던 것으로 안전운전은 기본이고 ‘주취자의 반말 시비에 난처한 경우도 있었고 간혹 장거리 손님을 목적지에 모셔다 드리고 요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권오창 씨는 나쁜 기억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12시간 택시 운행을 하고 쉬는 날 자신의 봉사 순번이 돌아오면 야간 시간이라도 오산 세마교차로 육교 아래로 교통정리 봉사를 나간다.
때로는 학교앞 횡단보도에서 교통봉사를 할 때, 길을 건너는 어린 학생들이 “안녕하세요~”, “수고사세요~~”라는 인사를 들으면 뿌듯하기도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긍적적 마인드를 놓지 않는 권오창 봉사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이나 낮이나 자신이 지켜야 할 위치에서 봉사하며 2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권오창 씨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며 “무엇이든 열심히 하자! 봉사도, 운전도, 그냥 이대로 유지만 되도 나는 행복하다” 라고 말하는 욕심 없는 이웃집 아저씨이다. <저작권자 ⓒ 오산인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동성 기자 osanin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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