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궐동 곡부공씨(曲阜孔氏)는 중국에서 유래한 한국의 성씨이다. 본관은 곡부(曲阜) 단본이다. 시조는 중국의 공자(孔子)로, 본명은 구(丘) 자(字)는 중니(仲尼)로 중국 노나라 추읍에서 태어났다.
충정왕 3년(1351) 54대손 공소(孔紹)가 원(元)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로, 공민왕과 결혼한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종하여 고려에 왔다가 귀화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고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져 창원(昌原)을 식읍으로 받아, 우리나라 곡부공씨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본래 우리나라 공씨는 창원공씨라 불리었는데 공서린의 9대손인 공윤항(孔胤恒 1769~?)이 학문이 뛰어나 왕명으로 특별히 성균관에 입학하게 되었다.
1792년(정조16) 초계문신친시(抄啓文臣親試)에서 장원하였고, 이어 1794년 알성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을 때 정조 명으로 방목단자(榜目單子)에 본관을 곡부(曲阜)로 넣게 하면서 이때부터 우리나라 공씨는 곡부(曲阜)를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공윤황은 이후 1796년 정언(正言)이 되었으며, 뒤에 병조좌랑(兵曹佐郎)을 지냈다.
궐동 곡부공씨의 입향조는 공소(孔紹)의 6세손인 조선 성종 때 군자감정을 지낸 공희(孔禧)가 평택시 현덕면 덕목리에서 화성부 중구면 구정촌(궐동)으로 들어와 세거하면서부터이다.
공희(孔禧)가 오산에 입향 후 후손들이 크게 번창했는데 소격서령(昭格署令) 공숙(孔淑), 영의정에 추증된 공제노(孔悌老), 우봉현령 공의달(孔義達), 문헌공 공서린(孔瑞麟 1483~1514), 공윤항(1769~?), 독립운동가 공칠보(1883~1939), 사회운동가 공석정(孔錫政 1902~1944) 등의 후손들이 배출되었으며, 한편, 정조 16년(1792) 8월 27일 공자탄신일을 맞아 정조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공자의 자손을 우대할 방도를 강구하라”명하고 공서린이 강학(講學)하던 옛터에 궐리사(闕里祠)를 신축하게 하고 현판을 내려주었다.
이후 여러 임금이 제문을 내렸으며, 공자가 세상에 태어나 영면할 때까지의 성적(聖蹟)을 기록한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跡圖)의 목판본이 궐리사에 보관되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조는 은행나무에 얽힌 공서린의 사연을 듣고 경기감사와 화성유수에게 공자의 사당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특히 공자가 살던 노나라의 궐리를 따서 사당 이름을 ‘궐리사(闕里祠)’라 하고 지명도 구정촌에서 ‘궐리’라고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손수 편액을 써서 내려주기도 했다.
오산시 궐동에 위치한 궐리사는 우리나라 2대 궐리사 중 하나로,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공서린이 관직을 그만두고 내려와 강당을 세워 유생을 가르쳤던 곳이며 1994년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오산 궐리사를 창건하게 된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 능에서 아버지를 그리며 멀리 남쪽을 응시하고 있을 때 많은 새들이 울면서 한곳으로 모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겨 새가 모이는 곳을 따라가 보니 죽은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어 사연을 물었다. 중종 때 기묘명현 공서린이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뜰 안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놓고 문하 제자들이 공부를 게으르게 하지 않도록 북을 치며 독려했던 곳으로 공서린 선생이 죽자 은행나무도 따라 죽었다고 한다. 이를 본 정조 임금이 곡부공씨의 시조인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짓게 하고 사당 이름을 궐리사(闕里祠)라하고 손수 현판을 써서 하사하였다고 한다.
1950년 이전 궐동 전체 53가구 중 50가구가 곡부공씨였을 만큼 큰 집성촌을 이뤘지만, 지금은 10가구 정도 살고 있으며, 은계동, 갈곶동 등 오산 시내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한편, 궐동 곡부공씨 집성촌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두각을 보인 인물을 살펴보면 공자의 77대손인 초대 오산면 위원이었던 공을선(1905)과 79대손 오산읍장을 지낸 공호식(1933), 79대손 오산·화성정책자문위원회장을 지낸 공문식(1938), 79대손 김천과학대학 학장을 지낸 공형식(1956), 80대손으로 현 오산대학교 세무회계과 교수 공병무(1964), 81대손 공군 준장 공승배(1968)등 수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궐동 곡부공씨 집성촌의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진길장(陳吉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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